문현동 금도굴 사건

정충제 선생님이 문재인에게 보내는 편지

다음은 2012년 정충제 선생님이 문재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문재인 후보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충제라는 사람입니다. 좀 자세히 저를 소개합니다. 89년말경에 부산일보에 ‘지리산은 통곡한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한 적이 있는 작가입니다. 여자빨치산 정순덕을 찾아내어 묻혔던 지리산에 빨치산역사를 파헤쳤던 실화가 기억날것입니다.

부산시 남구 문현동 1219-1번지에 2002년 3월 2일,직경60cm로 깊이16m의 암반층을 뚫고서 수직구가 완성되었습니다. 목적은 순전히 땅속에 숨어있던 일제 어뢰공장의 한가닥을 관통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나를 따라다니며 온갖 궂은일을 다 하던 나의 조수 김성태(63세, 경남삼천포출신)가 재주를 부렸습니다. 배신을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뚫어 찾아낸 지하 수평굴 속에 ‘금’이 없었다면 그런 배신은 생기지도 않습니다. 오뉴월에 똥파리떼처럼 도굴단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현장땅을 싯가에 세배나 주고 사 버렸습니다.

땅을 판 주인인 조규혜(63세)와 정문균(53세) 두 사람도 금도굴에 지분을 나누어주고 도굴단에 합류시켰습니다. 한 패거리가 된거지요. ‘금’이 없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생기겠습니까? 저는 죽을 용을 다 짜내어 문현동현장에 금도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응답은 없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별 미친놈도 있네’식으로 사건자체를 믿지 않았습니다. 또 경찰등 관련기관들은 이미 도굴단에 매수가 되었는지 들은척도 않았지요. 한국에서는 이전에 이런일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고심 끝에 저는 문재인 변호사님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때가 2002년 4월 중순경입니다.

부산 연제동, 법조타운 대로변의 어느빌딩, 4층인가에 ‘부산’이라는 간판을 붙인 법무법인 입니다. 제 차례가 되었고 문 변호사와 마주앉았습니다. 그때 변호사께서는 발이 드러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발가락이 보이는 발가락양말을 신고 있었지요. 지금도 선명하게 눈앞에 떠 오릅니다. 저는 발가락 양말을 한번도 신어본 적이 없기에 더욱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저가 문 변호사를 찾아간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변호사는 노무현인데 그는 이미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문 변호사께서는 서울로 아직 가지않고 계속 그곳에 근무했기에 저가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제 판단으로는 노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측근이 문 변호사라 봤습니다. 조만간 서울로 입성할 것이라 믿은거지요. 그러니 서울로 가시기 전에 문현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굴에 진실을 알리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그리해야 서울에 올라가면 문현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도굴에 진실을 대통령께 소상히 전달할것이니까요.

노대통령께서 알기만하면 금도굴단은 쉽게 일망타진 될것이라 믿었지요. 그것은 대통령이 되기전, 종로보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하고 있을 때의 일 입니다. 저는 그때 그분과 세차례에 걸쳐 직접만나 문현동지하 어뢰공장의 존재여부에 대한 설명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은 문현동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었습니다. 일본군들이 중국에서 약탈해와 숨겨놓았던 ‘금’이 그때 도굴단을 소탕함으로써 나타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침체된 부산경제에 큰 활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환호하면서 얼마나 대통령을 칭송하였겠습니까? 시대의 포청천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세상이 시끄러웠을것입니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찾아간 저를 문변호사께서는 몇마디 들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버럭 역정부터 냈지요. 그때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문변호사의 안색은 바로 두꺼운 얼음 같았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문현동에서 일어난 금도굴에 진실을 설명하려는데 제말을 끊고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말도다 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쫓겨나듯 바깥으로 나온겁니다.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당연히 제말에 귀를 기울여 관심을 표명해야 됐음에도 그 반대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날의 만남은 초면이 아닙니다. 법조타운이 옮겨오기 이전에 경남도청 자리에 있을때 해직교사문제로 상담차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반가워할줄 알았는데 실망이 컸습니다.

그후로 저는 제가 짜낼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고정된 편견의 벽은 너무도 두터워 진실을 알리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2003년12월말경에 경찰청 특수부와 연결되었습니다. 새벽2시경까지 문현동현장에 대한 설명회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날 오전중으로 결재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을 개시 할것이라 했습니다. 수사관들 모두는 긴장한 낯으로 ‘대한민국경제를 살리는 사건을 우리가 해결하는구나’고 말 하면서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날고 기는 재주를 가진 도굴단이라해도 이제사 끝장이 나는구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결재라인이 경찰청장이 아니랍니다. 그때 처음 알았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이 한답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때 특수4계에서 온 연락에 맥이 빠졌습니다. 또 실망입니다. 민정수석이 잘랐다고 했습니다. 바로 문재인 입니다. 문현동과 무슨 원수가 졌나? 억하심정도 유분수지 어찌 이럴수가 있는가! 저는 당신 문재인과의 지독한 악연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랬어도 그때는 청와대가 직접 금도굴단과 연결되었으리라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진실을 알았기때문에 지치지 않았습니다. 절망은 없는것입니다.

9전10기의 정신으로 계속해 관계요로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특히 청와대의 문을 집중적으로 두드렸습니다. 아무리 민정수석이 잘라도 청와대를 저는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노대통령과 저 사이에 문현동을 두고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너무도 높은곳에 계시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가 않았습니다.

결국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찾아내고 신문고에 금도굴사건을 정리해 올렸습니다. 연속해서 세번을 올리고 나서야 회신이 왔습니다. 대검찰청에서 직접 착수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고작 부산동부지청에서 수사를 할것이라는 통지서입니다. 유사이래 최초의 어마어마한 사건을 최말단 검찰에서 어찌 처리할까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입니다. 동부지청에서 불러서 갔더니 수사는 이게 무슨 수사입니까?

새파란 젊은 여자 서기가 주소와 이름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더니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장난치는 것 이냐고 항변했더니 ‘사실관계조사’랍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다음에 또 부른다기에 기다리고 있는데 한달이 지나가도 감감 무소식 입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사건이 종결되었답니다. 사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끝이 난 것입니다. 아이들 장난도 이쯤되면 억장이 막힐 일입니다.

그때의 담당검사는 제주출신으로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은 성균관대학교 출신에 이름은 김원택이라고 기억납니다. 죽어라고 고함치는 소리는 외면하고 형식적인 시늉만 내고서 금도굴을 덮어버린 겁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반복되었는데도 저는 꿈을 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계시는 청와대가 범죄단인 도굴단과 연결된줄은 상상도 못한것입니다. 평범한 일개인인 저가 국가에 권력기관인 국정원, 검찰, 경찰이 총동원되어 문현동 금도굴사건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음에 등장한 해결사는 연합통신에 지방국장 이었던 조양일 입니다. 조양일은 문수석과 경남고등학교를 한 반에서 다닌 절친한 사이라고 했지요. 조양일은 내가 정리해서 전달한 서류뭉치를 들고 문재인을 만나기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문수석이 얼마나 바쁜지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때 문수석은 청와대 인근에 단독주택을 얻고 두내외가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문수석의 얼굴을 알아 보기 때문에 접객업소에는 갈수가 없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문수석의 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조양일과 문수석, 부인 모두 세사람입니다. 뜸이 돌자 조양일은 가져간 서류를 보여 줬답니다. 그때 부산 자갈치 시장 신천지 백화점1층에서 다이버숖을 하는 채상훈이 말이 나왔답니다. 문재인씨는 채상훈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지요. 채상훈을 가리켜 ‘우리부부의 다이버선생’이라고 하더랍니다. 금도굴에 동원되어 제주도 등지로 ‘금’을 실어 나른 배 탐해호(170t)를 여러번 탔다고 했답니다. 멀리 동해바다 38선과 가까운 곳인 왕돌잠인가 대화퇴 까지도 함께 갔다온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채상훈이 ‘금’을 도굴할 때 다이버를 지휘한 책임자 입니다. 그날밤 조양일은 문현동 금도굴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두내외 분은 아무말없이 듣기만 했다지요. 속내를 털어놓지않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조양일이 누굽니까? 평생을 기자로 국장까지 올라간 사람입니다. 눈치만 9단입니다.

“내하고 할말, 못할말이 없는사인데, 좀 이상합디다. 문현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도 희다, 검다 말이 없어요. 뭔가 당황스러워하는것이 참 이해할수가 없네요. 설마 그 친구가 도굴단을 ….,연결되었을리 만무하고…”

조양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날 전해준 장면이 떠 오릅니다. 시간이 흐른지금 그때 조양일이 골똘히 생각하면서 내 뱉은 말이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도굴단과 연결되었을리 만무하고’가 아닙니다. ‘바로 도굴단과 한 패거리로 붙었던것’입니다.

기자의 눈을 피하기가 어려웠겠지요. 그만큼 예리했을테니까요. 더욱 친한 친구사이라니 숨소리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나에게서 지분10%를 주겠다는 공증을 받고나서야 문현동사건 해결에 뛰어들었고 돈도 참 많이 썼습니다. 좋은 머리를 굴려 작업을 했기 때문에 소득도 많았지요. 도굴단의 두목 백준흠에게서 금도굴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서류와 사진을 한가방 가득 입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입니다. 조양일이 날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법조타운에 법무법인 또 ‘부산’입니다. 이번에는 대표 변호사가 키가작은 젊은분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과 조양일은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모양 입니다. 나는 그 젊은 변호사에게 문현동에 대해서 설명 했습니다. 한참 듣고있던 변호사가 저에게 도전적으로 말했습니다.

“문현동에서 ‘금’이 나왔다고 했는데 ‘금’을 한조각이라도 가지고 있어요?”

조롱과 시비가 반반씩 섞인 말투였습니다. 도굴단의 편을 드는지 도굴단이 노린 핵심을 거론하며 복장을 질렀습니다. “‘금’도 없는데 어찌 세상사람들이 믿겠어? 아무도 믿을사람이 없을거야!”

도굴단이 도굴을 감행하게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라고 봅니다. 도굴단이 가장 앞세우고 있는 이유를 들어 핀잔 하고 야유한다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금’이 한조각 내 수중에 있었다면 미쳤다고 그를 찾아가겠습니까? 변호사는 능글능글 약까지 올리는듯 어디까지나 시빗조로 빈정거립니다. ‘금’도 없으면서 ‘금’이 도굴되었다면 이 세상천지에 누가 당신말을 믿겠소? 이것은 도와주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말이고, 오히려 도굴단의 빈정거림을 대변한다고 봐야지요. 마치 수사기관에 신고한 강도 피해자 앞에서 증거가 없으니 어쩔수없이 풀어 주었습니다. 그 강도는 다시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해놓고 다른 일당을 시켜 두들겨 패는 짓이나 같은 격입니다. 그때 도굴단의 편을 들던 변호사 정재성은 뒤에 알고보니 노무현의 조카사위 였습니다. 노무현과 문재인이 다 청와대로 올라가자 법무법인 ‘부산’을 맡아 경영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충제를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되었을 것입니다. 저를 두고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사방을 들 쑤시고 다니니 송충이 씹은 맛입니다. 언론에 간간히 문현동이 터져나오니 귀찮아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그때마다 소방수를 동원하고 물을 뿌려 진화를 했기때문에 일회용으로 끝을 낸것만 벌써 여러번째 입니다. 이리하여 결국은 저를 잡아 넣기로 작정했던 것이지요. 그리해야 조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2005년9월6일 부산동부지청 서범준이란 애송이 검사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했고 무려44개월이나 징역을 살았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그 재판이 얼마나 ”개판” 이었는가 잘 말해 줍니다. 검사 서범준의 공소장은 제 맘대로 완전 창작해 낸 소설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판사 박종훈의 판결문입니다. 공소장과 판결문이 한자도 틀리지 않고 꼭 같다는 것은 무얼 말합니까? 미리 각본을 짜놓고 그 틀에 맞춰 억지징역을 살린것입니다.

한 구절만 인용하면 ‘부산 문현동일대에는 일본군이 판 어뢰공장도 없고 또 일본과 관련된 어떤 굴도 존재하지 않는데, 정충제가 사기를 칠 목적으로 박대통령 이발사인 박수웅이 보물을 찾던 실패한 굴을 일본굴 이라고 투자자 들을 속이고 금편을 편취했다.’ 이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제가 2002년3월2일 완성한 지하 16m 수직구아래 수평굴의 정체가 중요하다고 강조 하였던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 지하 무기고 담당 토목과교수 김 모대령의 감정도 묵살되고 전문기술사 둘의 감정서도 묵살되었습니다.

심지어 대학교수들의 소견서도 묵살해 버린것이 그 좋은 예가 됩니다. 그렇다면 엉터리 감정을 한 이상의 전문가들도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는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분들이 정확하고 정직하게 감정 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니 ”개판”이라는것이지요.

공소장이나 판결문대로 정말 박수웅이 실패한 굴로 사기를 쳤다고 할것같으면 뭣이 억울 합니까? 하나도 억울 할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미친 놈이라도 억울하다고 하지 않을것입니다.

제가 판 굴은 그때 박수웅이 실패한굴로 사기쳤다는 그굴이 아닙니다. 그 굴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굴인데 억지로 몰아 버리는데는 아무리 똑똑하고 재주가 좋아도 당 할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제가 주장하는 굴에서는 지금도 도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옹벽 위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 그걸 증명 할것입니다.

깊은 밤중에 방바닥 밑의 지하에서 굉음이 진동 한답니다. 집이 흔들리고 굉음이 진동한다는것은 바로 무슨 일인가 땅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은 수차에 걸쳐 관계기관에 민원을 넣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압니다. 중국에서 약탈해 온 금은 다 꺼내 처분하였습니다. 이제 수십톤씩 나가는 청동기물을 직경60cm 구명으로 꺼집어 올릴수 없기 때문에 조각조각 쪼개어 내는 작업을 하는것입니다.지하어뢰 공장 속에는 지금도 중국에서 약탈 해와 숨겨둔 금동불상 36좌가 있습니다. 중국에 세번째 국보인 2m70cm에 달하는 비취로 만든 어마어마한 불상도 있습니다. 그것은 도굴두목 백준흠이 만든 지하어뢰공장의 내부도면 속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 비밀지도가 제 수중에 입수되어 있는데 그 것이 다 말해줍니다. 있는 위치까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근거로 자신있게 폭로 하는것입니다.

물론 이런 보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일제는 한반도 전체에 징용령을 내려 죄없는 조선청년 들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그중 진해해군부로 끌고간 청년들 중 해방이 되고 나서 한사람이라도 살아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이 점은 국가기관인 일제 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이하 ‘항재위’)가 더 잘 알것입니다. 왜 살아 돌아간 사람이 없나? 이것은 당시 일제는 청년들을 살려서 고향으로 보낼수가 없었습니다.

살려서 보내면 당장 돌아서서 어뢰공장을 찾아 낼 것입니다. 그 속에 중국에서 약탈해온 보물을 숨겨놓았는데 그리된다면 헛수고입니다. 이래서 산채로 45년5월말쯤에 1,000여명의 죄없는 목숨을 지하에 몰아넣고 생 매장을 시킨 거지요. 실제로 도굴단의 두목 백준흠이 지하에 내려가 두개골을 세어 봤답니다. 무려 980개라고 백준흠에게서 직접 들은 사람이 그걸 증언 했습니다.

이러니 저는 결사적으로 수평굴의 정체를 밝히기위해 동분서주 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앞에서 말한 대학교수, 기술사등 세명의 소견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이 답답해서 제 편을 들고 거짓 소견서를 작성할수는 없습니다.

 

권력의 작용이란 무서웠습니다. 흑과 백은 누구라도 구분이 가능한 일 입니다. 빤하게 보이는 이것조차도 보물을 통째로 삼키겠다고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저를 지치게해서 김을 빼고 저에게서 약점을 파악하기위해 조양일을 이용했습니다. 노무현의 조카사위 정재성을 만나고 온 직후 조양일은 발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노골적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문재인이 때문에 입장이 난처한데 어찌 이 일을 더 이상 할 수 있겠소?’ 부산에 가기전 이미 조양일은 변했던 것이지요. 공증해준 지분10%도 포기 한다면서 문현동에서 멀어져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나서 2005년 봄입니다. 항쟁위, 초대사무국장 변호사 최봉태는 부산 문현동현장에 부하 둘을 출장 보냈답니다. 문현동 현장에 지하어뢰공장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파악해 보라고 했다지요. 어뢰공장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속에 분명히 유골이 재여 있다는 말도 무게를 싣게 되는것입니다.

갔다온 직원들의 복명서에 따라 윗선에 보고할 보고서를 만들었답니다. 윗선이 또 청와대 민정수석 이었습니다. 보고서의 요지는 ‘일제어뢰공장이 존재할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징용자 유골이 재여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으니 확인을 해 볼수 있게 결재를 해 주십시요’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주무관청에서 최종결재권자인 상급부서에 결재를 올렸다면 응당 OK 싸인을 받는 것이 관례입니다. 아니다 다를까, 이번에도 문재인이 또 잘라버리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문현동과 문재인의 관계를 전혀 알 수가 없는 최봉태는 기가 막혀서 한동안 많이 투덜거렸답니다.

이 말은 최봉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제피해자 연합회 관계자가 최봉태로 부터 직접 듣고서 저에게 전해준 말 입니다.

마치 가위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문현동만 올라오면 인정사정 없이 자르는 것이 청와대 민정수석의 주된 업무 였습니다.

문재인씨! 당신은 참으로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인간입니다. 어찌 함경도 아바이로 피난민의 후예인 당신이 부산바닥에서 인권변호사를 했는지 당신의 두얼굴에 가래침을 뱉아주고 싶소.

역사에 대한 작은 의혹 한점이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 해 보는것이 항쟁위 직원들의 마음 가짐일 것입니다. 설령 이러한 제보가 대한민국 국토가 아니고 외국이라고 해도 예외는 될 수 없습니다. 해당국가의 협조를 얻어 땅을 파고 확인해 보는것이 맞는 말 입니다.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하지 말아라! 한데는 분명히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민정수석의 책상위에 어뢰공장의 존재여부에 대한 정답이 있었나요? 존재여부를 판단해 볼 수 있는것은 항쟁위 설치규정에 의거 강제로 현장의 수직구 속으로 들어 가는것입니다. 그리고 수평굴의 정체를 알아보는것으로 시작해야 됩니다. 수평굴이 박수웅이 판 굴인가? 아니면 일제때 굴인가는 전문가가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박수웅이 실패한 굴이 아니라는 것을 구별해 내는것은 간단합니다.

첫째 화약발파의 흔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박수웅은 현행법에 의거해 화약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외 굴의 생긴모양, 방향, 길이 등만보면 당장에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이로써 박수웅이 굴이 아닌것이 밝혀지면 관련된 사람 모두를 출국정지 시키고 굴비 엮듯 착착 잡아들여야 됩니다. 금도굴의 진상은 당장에 밝혀 질것이고 배후세력도 더 이상 숨을곳이 없을것입니다. 비로소 진실은 제 자리를 찾고 그 동안 피 맺힌 세월이 눈녹듯 원한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죽도록 고생해서 문현동 입구에만 서면 당신 문재인은 가위를 들고 기다리다가 싹뚝!싹뚝!문현동을 잘랐습니다.

인생10년을 소모하며 죽기살기로 찾아낸 보물을 통채로 집어 삼켰습니다. 세상을 속이고 최초발견자 정충제를 바보만든 장본인이 바로 당신 문재인 인것 입니다.

어떤 국가기관도 그 많은 ‘금’을 몰래 독차지 할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청와대 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알고도 가만 있는지 몰라서 가만 있는지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바보멍청이 정권입니다. 유사이래 처음인, 이 건 한건만 밝힌다면 정권을 문재인이 만든 민주통합당에 넘겨주지 않아도 됩니다. 도둑놈들을 비호한 파렴치한 금도굴에 공범이 만든 민주통합당은 그 즉시 공중분해될것입니다. 왜 그걸 모르는지 억장이 무너집니다.

진실이란 아무리 숨겨려고 애써도 숨길수가 없습니다. 죽일려고 해도 죽지가 않는다고 배웠습니다. 2010년4월 초순경 부산 YMCA 총무가 당신에게 단행본 1권을 갖다 준적이 있지요? 그 책의 제목이 바로 ‘황금백합작전’입니다. 그 책의 저자는 바로 접니다. 저는 책 5권을 묶어들고 부산 YMCA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청와대로 가기전 당신은 부산 YMCA 이사였습니다. 그걸 알아낸 저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그 책을 당신에게 전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4권은 총무가 알아서하고 1권만 문재인에게 전달해 주라고 한것입니다. 그후 전달되었는지 확인해 보니 전달 되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읽어봐서 알겠지만 그 책에 노무현과 당신 이름은 실명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이미 그때 당신을 도굴단과 공범이라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당신의 반응을 측정 해 보기위해 일부러 책을 전달해 주었던것입니다. 그랬는데도 당신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청장 조현오는 고소하면서 왜 진작 고소할 대상인 나에 대해서 가만 있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당신의 공범들인 백준흠, 김성태가 다 알아서 할것이기 때문에 그랬지요? 민정수석 자리를 이용하고 막강한 권력을 동원해 검찰, 법원을 주물렀지요. 그래서 무고한 저에게 옥살이를 시킨 장본인도 당신이고요, 국정원을 동원하여 문현동에 금을 빼돌린것도 당신입니다.

지금부터 국정원이 문현동에 개입된 내용을 말씀드립니다. 뜻밖에도 국정원에 안전과장이란 사람이 포착되었습니다. 일개 평범한 국민이 국정원에 안전과장이란 직책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안전과장이 뭐하는 자리냐? 알아보니 국정원 소속에 시설이나 장비따위를 관리하는 부서랍니다. 김민수(48년생)라는 자가 안전과장인데 전라도 광주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가 관리하는 안가에서 두목 백준흠을 보호해 준다는것도 알았습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호해주고, 위치추적기 까지 달아주었다지요. 그외 또 해준것이 뭡니까? 두목 백가놈이 입이싸서 나불거렸기 때문에 그 말이 제귀에 들렸습니다. 확인해 보니 틀림 없었습니다.백가놈이 2004년11월달에 서울 서초동에서 지리산까지 납치를 당한적이 있었습니다. 또 그런일이 생기면 큰일 납니다. 다 들통이 나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국가안보에 사용되는 중요시설인 안전가옥이 여관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호텔입니까?

도둑놈을 보호해주는 국가 정보원! 국가안보와 상관있습니까? 이렇게 요상스러운 일을 제가 모두 알아버린겁니다. 안전과장인 김민수는 확인되지 않은 다른 국정원 동료 둘 까지 대동하고 백가놈과 술집에서 희희덕거렸다지요. 그 술집 이름이 강남구청 인근에 고급룸싸롱, 하필이면 이름도 ‘터널’입니다. 터널의 사장 한진순이 모든것을 다 털어놓았기 때문에 제가 잘 알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국정원에 안전과장이 김민수란것은 연합통신 지방국장 조양일이 알아낸 사실입니다. 터널에서 상대한 거물이 또 한사람 더 있습니다. 전 해병대사령관이 그분입니다. 백가놈이 문현동에서 빼낸 ‘금’을 문재인이 탔던 170톤 탐해호에 싣고, 숨길려고 제주도까지 수십차례 다녔습니다. 그리하여 제주도의 해안경비를 맡고있는 해병대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끌어들인자가 MBC 싱글벙글쇼의 진행자 강석입니다. 강석이 해병대출신입니다. 강석이 앞장서서 백가놈에게 김명환중장을 붙혀준 것입니다. 강석은 그 댓가로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거액을 받아 광진구 자양동에 ‘스파헬스’라는 엄청난 규모의 목욕탕을 샀답니다.(이 헬스크럽에서 코메디언 김형곤이 죽었다)

도둑놈 주제에 귀신잡는 막강한 해병대사령관을 친구 만나듯 예사로 만나 술을 마신것이 코메디 입니다. 둘은 만날때 마다 발렌타인 30년 산만 마셨다고 미모의 주인 한진순이 말했습니다. 김장군은 두주 불사형으로 맥주잔에 가득 따라 맥주마시듯 원샷으로 털어 넣었답니다. 백가놈은 홀짝홀짝 입에 잔을 대는 시늉만 했는데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주변을 두리번 거렸답니다. 술이 취한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하고 언제나 쌩쌩했는데 특이한 행동은 안절부절 주위가 산만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불쌍한 놈입니다. 얼마나 불안했길래 그리 했을까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국정원과 귀신잡는 해병대가 번갈라 서너달간을 ‘터널’에서 살다시피 했다지요. 그럴때마다 바깥출입문 셔트를 내렸답니다. 그들 귀하신 몸들만 나타나면 다른 손님은 일체 받지 않았답니다. 국정원직원 셋은 백두목으로 부터 청나라때 도자기 두점,세점씩을 선물 받았답니다. 도자기는 청나라때 것이 가장 비싸다지요.

이것이 어디서 났을까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문현동어뢰공장 속에서 나온겁니다. 한진순이 말한것 뿐만 아니고 전화녹취록이 모든 진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최고 권력의 지시에 가장 민감한 기관입니다. 권력에 입김과 밀접한 곳이지요. 국가안보의 대들보 국정원과 이토록 두목 백가놈이 깊이 연결된것은 무얼 말해줍니까? 청와대의 지시가 없이는 어찌 백준흠을 국정원에서 멕여주고 재워주었겠습니까? 이런 썩은나라가 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에 있을것입니까?

한때는 충성을 다 바쳤던 배신의 주역 김성태 입니다. 덩치가 황소만한 이 놈은 표리부동한 인간의 전형입니다. 문현동의 ‘금’을 매개로 백준흠과 만난 이 놈은 백준흠이 청와대와 접목되자 백가를 신처럼 떠 받들었답니다. 2002년3월2일, 수직구가 완성된이후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도대체 무식한 이 놈이 뭘 믿고 저토록 안하무인격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 까지도 미몽속을 헤메고 다녔습니다. ‘머슴살이 하던 놈이 하루아침에 집주인을 쫓아내고 오늘부터는 내가 이집주인이요’하듯 기고만장한것은 누굴 믿고 저러나? 그때 그 놈이 나에게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한말이 한마디 있습니다.

“형님!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나중 두고두고 후회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지분20%을 달라는 협박입니다. 백가놈이 노무현 쪽과의 접묵을 자신있게 말하니까, 내가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면 백가놈이 하자는 대로 청와대를 끌어 들이겠다는 나에게 보내는 최후 협박성 통첩 이었던것입니다. 그때 그놈이 한마디 더 한말이 생각 납니다.

“후회 할 짓은 하지 마시요!”

훈계하듯 한마디 던지고 비웃으며 그 놈은 돌아서 갔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놈이 뱉고 간 이말은 두고두고 녹음되어 귓전을 때렸습니다. ‘후회 할 짓을 말아라!’ 막상 당하고 나서 세월이 흐르니 그때 그 놈이 던지고 간 이 말 두마디가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그때 내가 이놈의 요구를 수용했드라면 징역살이도 하지 않았을것인데…, 또 처자식의 눈에서 눈물을 쏱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솔직히 도둑놈의 말을 듣지 않은것을 후회 할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때 내가 그 놈이 하자는대로 순순히 응했다면 저는 쥐도새도 모르게 황천객이 되었을것입니다. 어떤식으로 든지 백가놈은 나를 제거 했을것입니다. 이럴때는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 하늘이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견디어 낸 세월입니다. 수직구를 판 업자, 전 수산 중공업 회장 박주탁(64세)의 꼬임에 내가 넘어가 도굴단의 일원이 되었다면 어찌되었을 까요? 이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들통날것이고 이름 앞에 ‘도둑놈’이란 수식어를 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 자식들이 세상사람들로 부터 손가락질 받게 하지 않은것만 해도 천만 다행입니다. 도둑놈 김성태 위에는 두목 백준흠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청와대에 경찰권,검찰권을 떡 주무르듯 행사하던 문재인이 있었지요. 또 그위에 최고 높은 어른은 죽은 노무현 입니다.

이런등식이 성립되는 순간, 소눈깔같은 퉁방을 눈알을 두리번거리던 천생타고난 도둑놈 김성태가 큰소리 치고간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우스운 일입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어 대한민국이 서글퍼 웃는 웃음이 더 우습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다 같이 태어나 살고 있는데도 저에게는 이 조항이 너무도 먼 곳에 있는 듯 느껴집니다. 국가 권력의 잘못 적용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것입니다. 도둑놈을 편드는 나라,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국가권력이 잘못 적용 되는것은 마치 조직폭력배가 나라를 다스리는것이나 다름 없지요. 그래서 지도자는 철저히 도덕성을 검증해서 잘 뽑아야 저 같은 불행한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권익위원회? 인권위원회? 아무소용이 없는 세금만 축 내는 기관입니다. 찾아갈 곳이 그곳 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도 마이동퉁인 곳이 이 두곳이었습니다. 문현동 금 도굴사건에 비호 세력은 대한민국에 촘촘한 그물망처럼 널리 퍼져있기에 그랬던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해결될 수가 없다는 판단에서 저는 어쩔수 없이 중국행을 선택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이 글을 씁니다. 딸자식의 결혼식이 임박해 오는데 참석못하는 애비는 눈물로 통곡합니다. 황금백합작전이라는 문현동 금도굴을 폭로하는 책을 낸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2011년 12월 20일 인천에서 중국행 배를 탔습니다. 그리고 이틀뒤에 ‘체포영장’이 발부된것을 알았습니다.

 

문현동 현장에 수직구 하나를 뚫을때 까지 걸린시간이 10년입니다. 지하를 투시하는 능력이 없는 인간이다 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피와 눈물과 한숨과 고뇌와 번민의 세월 입니다.

이렇게 소원하던 구멍 하나는 결국은 뚫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도둑놈 김성태가 그때 처음 한 말이 ‘형님 놀라지 마이소, 인자부터 고생끝! 행복시작입니다.’ 물속에 잠긴 지하16m 수평굴 속에 첫 장면을 보고 전화로 전해온 말입니다. 황토색 마다리 포대가 꽉 들어차 재여 있고 포대 마다에는 일본식 한자가 세자씩 찍혀 있었습니다.

‘伊藤忠’이 세자입니다. 나중 다이버가 내려가 마다리포대속을 뜯어보니 ‘금조각’이 들어 있었답니다. 이러고나서 지분을 가르는 과정에서 배분문제로 다툼이 벌어졌고 배신으로 바뀐겁니다. 백가놈이 나타난 싯점이 바로 그즈음 입니다. 백가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김성태 그 놈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렇게 날뛸수가 없었습니다. 도굴은 현재도 진행형으로 계속되고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문현동에 바친 내 인생의 21년은 어디서 찾습니까?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처럼 이리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이게 뭡니까?

지하에 밀차레일의 길이만 삼십리도 더 된다는 일제어뢰공장은 지금쯤 개발되어 부산에 관광명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와 연신 황금알을 쏱아놓고 갈 것입니다. 실제로 문현동지하 수평굴 속을 감정한 서울마포에 한자엔지니어링 대표 진수웅(73세)께서는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스페인의 지브랄타 해협에 가봤지. 영국군들이 2차 대전때 파놓은 지하요새거든, 굉장해 어마어마하게 넓은 지하굴인데 말이야, 음악당도 있고, 레스트랑도 있고, 별거 다 있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 들이 어찌나 몰려오는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야! 내 생각에 말이야 문현동은 지브랄타보다 더 넓을것 같애.”

재여져 있던 ‘금’은 침체된 국가경제를 살리는데 큰 활력소가 되었을것입니다. 남북의 대치 속에서 한반도통일에 대한 촉매제로 문현동은 큰 역활을 했을것입니다. 세계에서 두번째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입니다. 중국에 국보3호 비취불상(2m70cm)이 그속에 있습니다. 백준흠이 만든 비밀지도에 그 위치가 상세히 표시 되어 있습니다. 이 비취불상을 인양해 올리고 중국에 돌려주면 68년만에 돌려받은 중국은 감격할 것 입니다. 이래서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우리한국이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나간거지요. 죽은 노무현! 살아있는 문재인! 그대들 두사람은 이래서 바로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국민전체의 ‘공공의 적’이 됩니다. 능지처참해도 분이 풀릴 일이 아닙니다. 만고천추에 민족반역자인 그대들은 갈아마셔도 시원치가 않을것입니다.

 

2010년1월중순, 금도굴사건을 세상에 폭로하는 책 ‘황금백합작전’이란 단행본 한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로부터 20여일쯤 지날즈음, 두목백준흠이 출판사에 사장을 협박하는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앞서 2005년봄에 뉴시스통신사에 사회부장 김병헌이 문현동 금 도굴사건에 관련해 5번이나 기사를 내보낸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도굴단의 이름을 모두 실명으로 썼는데도 고소를 하지 않았던 놈 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출판사 측에서 이름을 한자씩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우겨 한자씩 바꾸었는데도 트집을 걸어온 것이지요. 그 만큼 책 출간에 겁을 먹은겁니다. 출판사사장과 저는 백준흠일당에 의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출판사 사장은 오라는 날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달랐습니다. 겁없이 나타났다가 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없는죄도 날조해 내고 총각도 처녀로 바꿔치기하는 대한민국에 수사기관입니다. 까딱 잘 못하면 영원히 문현동의 진실이 빛을 못 볼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저는 지금까지 잠수함 신세입니다.

앞서 2003년도에 경남산청경찰서에서 조사 받을때 일 입니다. 백준흠이 수사과 책상위를 뛰어 다니는 난동에 가까운 소란을 부렸습니다. 그런 그를 수사관들은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잔뜩 위축되어 뭔가 겁을 집어 먹은 표정들이었지요. 오히려 백준흠에게 잘 못 보일까봐 절절 기는 모습에 저는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2004년도에 그때의 해답을 알고 저는 쓴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탁종수(48년생)라는 해병대출신의 깡패가 용산역앞에 있습니다. 이 자가 백준흠의 말을 믿고 2002년5월에 오천만원을 빚내어 백준흠에게 투자했습니다. 1%지분을 받은것은 도굴단이 만든 지분 배정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내가 가지고 있다). 이자가 제한테 월경 귀순해 왔습니다. 그리해서 탁종수가 모든걸 다 털어 놓았던것입니다. 경찰청 높은 나으리께서 직접 산청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답니다. 백준흠이 편을 들어주라고 지시를 한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말로만 법치국가이지 문현동에 대해서는 ‘마피아의 나라’입니다. 저는 그때 탁종수가 말해 준 그 경찰나으리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나으리 역시 정권의 실세인 청와대 문재인이 시키는대로 충실히 따른하수인에 불과 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경찰권, 검찰권을 제 하고싶은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문재인, 당신말고 이 세상천지에 누가 백준흠이 같은 도독놈을 봐줄 놈이 있을까요? 당신네들 패거리가 살기위해 백준흠을 방치할수 없었던것이지요.

청렴하고 선량한척,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 ‘야누스’가 바로 당신의 진면목이 아닌가요? 뒷전에 숨어서 권력의 칼을 휘두르며 온갖 더러운 지시와 공작을 주도한 장본인인 당신을 어찌 내가 모를까요? 무서운 빨치산도 파헤친 정충제가 아닙니까? 그밥에 그나물이라고 한가지만 보면 저절로 전체를 알 수가 있지요. 단적인예가 2012년 1월10일에 터져나온 정윤재 사건입니다. 민주통합당이 출범 한 직후 입니다. 정윤재가 누구냐? 당신 문재인의 심복똘마니가 아닙니까?

청와대에까지 데리고 다닌 의전비서관이지요. 이 자가 은행으로 부터 뇌물을 챙겼다고 검찰에 구속된 겁니다. 그 뉴스를 멀리 중국에서 보고 당신의 향후 속셈을 간파했습니다. 4월총선에 사상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고 여세를 몰아 12월대선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전초전으로 민주통합당을 만드는데 막후에서 주도적으로 조정했지요. 문현동에 ‘금’을 처분한 비자금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을테니 자금은 걱정안해도 될것이고, 대표 간판주자로 내세운 사람이 한명숙입니다. 노무현 시절에 국무총리도 시켜봤고, 또 초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겨 봤기 때문에 믿을수 가 있지요. 이래서 이 여자를 전면에 내 세웠지요?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문현동에 의혹을 영원히 지우개로 지울테니까요.

 

노무현의 죽음을 저는 타살이라 봅니다. 문현동 금도굴 사건에 대입시키면 답은 간단히 풀립니다. 비자금을 꼬불친 대통령이 어디 한 둘 입니까? 두꺼운 뱃짱과 끈질긴 뚝심이 노무현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노무현이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약한 사람은 절대로 승부수를 던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죽기아니면 살기로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주효했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 대통령에 당선 되었던거지요.

그런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밀림이 나타나도, 사막이 가로 막아도 능히 헤쳐나갈수 있기때문입니다. 이래서 나는 노무현이 타살 당했다고 보는겁니다. 대검중수부에 끌려가 이인규로부터 문현동에 대해서 심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두번째 끌려가면 다 들통날것입니다. 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뿐입니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 이래서 대통령노무현은 희생양이 되었던것이라 봅니다. 전체를 살리기위해 개인을 잘라버린 배후에 무서운 당신이 있었다고 보는데 당신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팽’ 당한 점에서 보면 노무현이나 저나 피차일반으로 둘다 문현동에 피해자가 됩니다. 다만 틀린점이 있다면 노무현은 죽었고 저는 살아있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결론은 ‘노무현이 자살했나? 타살인가?’에 대한 답은 문현동 수평굴 속에 있습니다. 이 의문만 풀리면 모든 문현동에 의혹도 해결됩니다. 세간에 떠 돌아다니는 쓸데없는 논쟁과 유언비어도 사라질것입니다. 또한 저역시 떠돌이 생활에 광야를 졸업하고 따뜻한 가정으로 귀가 할수가 있습니다.

빨리 집에 들어가야 아내의 두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줄 것이 아닙니까?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 주장에 진위여부만 검증하면 간단히 끝납니다. 문현동에 촛점을 맞추고 제가 2002년3월2일 완성한 수직구속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해답이 나타날것입니다. 맞다, 틀리다 말만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란 말처럼 지하16m 수평굴 속만 살펴보면 다 알수 있습니다. 돈도 얼마 들지 않습니다. 이 일을 왜 못합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존재하는 항쟁위가 있지 않습니까? 항쟁위 설치규정을 적용하면 어떤사유지라도 다 들어갑니다. 수직구에 콘크리트로 막았다고 해도 문제없습니다. 뜯어서 따라 들어가면 됩니다. 큰공사도 아니고 며칠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한다고 결정되면 저는 그 즉시 광야에서 사랑하는 대한민국으로 당장에 날라가겠습니다. 대신 도굴단들이 지분을 갈라먹은 배정표에 있는 명단에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도독놈들은 빠져 나갈수 없도록 출국금지 조치는 해놔야 됩니다.

다시 잡아 올려면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들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문재인 당신은 이글을 보는 즉시 나, 정충제를 고소 하십시요. 관계당국에서 신변의 안전만 보장해 준다면 저는 즉시 귀국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시킬 것입니다. 이리하여 당신과 나는 전국민의 시선을 법정으로 모으고 공명정대하게 ‘시시비비’를 따져 봅시다. 금도굴 배후에 당신과 노무현이 관여 했는지는 당장 밝혀 질것으로 확신 하기 때문에 자신 합니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우리나라 좋은나라라고 목청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리되는 날, 문현동 지하에 1,000여구 중음신들도 좋아서 춤을 출것입니다. 갑갑한 지하의 차거운 물속에서 드디어 풀려나는 구나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억울하게 생매장 당한지 햇수로 68년만에 생매장 당한 의문의 진실이 모두 드러날테니 말입니다.

 

안녕하십시요. (뒷장에 도굴단의 명단을 공개 합니다. 이글의 진실을 인정 받기 위함 입니다.)

2012.02.13

대륙의 광야에서 정 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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